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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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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다. 많은 만큼 그것의 쓰임 또한 다양했다. 농사에서부터 집안 살림살이, 아궁이를 지피는 땔감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언제나 소나무가 관여하고 있었다. 입에 넣을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소나무 껍질로 목숨을 이어가기도 했다. 

▲ 김복순씨가 덧술을 만들기 앞서 송순을 선별하고 있다.
ⓒ 전라도닷컴

소나무를 재료로 만들어진 술 또한 다양해 송근주 송화주 송실주 송엽주 송순주 등 명성 높은 술만 다섯 가지나 되었다. 이를 한 데 묶어 별도로 ‘오송주’로 칭했다.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술까지 합하면 소나무를 재료로 한 술은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그 중 최고는 송순주다. 술맛뿐만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정성에 있어서도 송순주를 따를 술이 없다.

김씨 집안에서만 400년을 이어온 술
송순주의 내력은 이 땅에 있는 어떤 술보다도 길다. 현재 송순주의 맥을 잇고 있는 김복순(70·전북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6호)씨의 집안에서 가양주로 전승돼 온 세월만 400년이 넘는다. “우리 집안에서는 맏며느리의 필수 덕목이 있는디 고것이 송순주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는 것이제. 그런께 송순주가 400년이나 쭉 맥을 이은 것은 다 집안에 들어온 여자들 덕이제”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송순주의 역사는 김씨 집안의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김씨의 집안에는 술 만드는 비법만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송순주가 그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내력까지도 구전되고 있다. 400년 동안 이어져 온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조선 선조 때 병조정랑까지 지냈던 김택(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비법을 수소문하던 부인(완산 이씨)이 어느 날 산사의 여승으로부터 소나무 순으로 빚은 송순주가 병세에 좋다는 말을 들었다. 양조법을 배운 부인은 송순주를 그에게 장기 복용시켰고 병은 금방 호전되었다. 김택은 김복순씨의 남편인 김창신(작고)씨의 16대조이다. 이후 그 소문은 조정에까지 퍼져 송순주는 궁중에서도 즐겨먹는 술이 되었다.

▲ 땅 속에 묻은 술독에 덧술을 넣는 모습.
ⓒ 전라도닷컴
김씨 집안이 송순주에 갖는 애착은 무척 각별하다. 400년을 이어오며 송순주가 빚어지지 않은 시기는 온 나라가 난리통이었던 한국전쟁 때뿐이다. 가양주로 이어졌던 우리술들의 숨통을 거의 끊어 놓았던 밀주단속의 여파 속에서도 송순주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만들어졌다. 김씨는 “묵을 쌀이 없어 콩깻묵으로 끼니를 때운 적은 많지만서도 술 맨드는 일을 거른 적은 없었제”라고 말했다.

밀주단속을 피하려는 노력 또한 각별했다. 송순주를 빚는 날은 무조건 밤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었다. 한밤중이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대문을 닫아걸고서야 누룩을 디디고 고두밥을 지었다. 술독도 부엌 바닥에 땅을 파서 묻고는 솔잎이나 장작더미로 덮어 철저하게 위장했다.
“그때는 말도 못했제. 그때 고생을 말로 하라문 밤 새도 부족할 것이여. 술을 담그면서도 귀는 대문 밖으로 열어놓아야 했으니께. 사람 하나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했제. 지금 생각하문 이 술 지켜낸 것이 꿈 아닌가 싶어.”

못다 이룬 꿈, 송순주 시판
술 만드는 일이 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밀주단속이 사라진 1980년대부터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송순주의 명성은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83년 전북도문화재위원회가 주최한 민속주 심사에서 송순주는 전북지역의 최고 술로 공인받는다. 2위는 전주 이강주였으며 3위는 익산의 호산춘이었다. 87년에는 김씨가 술로는 지역 최초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면서 전국 술꾼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울려대기 시작했다. 송순주 한 번 맛보고자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끝없이 이어졌다.
술 인심 후한 김씨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돈 한푼 받지 않고 술을 아낌없이 내줬다.
“이날 평생 송순주로 십 원짜리 한 푼도 받아본 역사가 없네. 내 술 한 번 마시자고 먼 길 달려온 사람들한테 어떻게 돈을 받겄써”

술 만들어 놓기가 바쁘게 술독이 비자 김씨의 남편 김창신씨는 송순주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술사업에 뛰어들 꿈을 꿨다. 빚을 내 공장부지도 사고, 전국의 술공장들을 찾아다니며 현대식 술 제조기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 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공장부지를 사고 영업허가를 낼 때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사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알아보러 다닐 즈음 덜컥 IMF가 왔다. 자금줄이 막힌 후에도 얼마간을 더 술사업에 매달렸던 김창신씨는 결국 영업허가증 자체를 반납하고 말았다. 그는 400년 동안 집안 대대로 이어온 술을 시판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작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술로 생긴 병은 요 술 마시문 금방 낫어”
▲ 잘 발효된 송순주는 호랑이 눈동자색을 띤다.
ⓒ 전라도닷컴
송순주는 술 만드는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술이다. 순수 제조기간만 100일이 걸리며 누룩도 백곡과 황곡을 같이 쓴다. 물은 지하수나 우물물만 사용한다. 술의 기본이 되는 송순도 4월 중순부터 5월 보름 사이에 소나무 옆가지에 난 새순만을 뜯어다가 시루에 찐 후 하루 햇볕에 말리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밑술은 맵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을 물에 재운 후 건져내어 가루를 만들고 누룩과 혼합한다. 밑술에 쓰는 누룩은 백곡으로 밀을 갈아 체로 쳐서 기울 조각을 완전히 제거한 것만 사용한다. 여기에 물을 혼합해 6일의 숙성시간을 거치면 밑술이 완성된다.
덧술은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황곡을 넣고 5시간 가량 물에 불린 송순과 밑술을 넣어 함께 혼합한다. 그것을 땅 속에 묻힌 술독에 넣고 13일 정도 숙성시키면 알코올 농도 18도 내외의 덧술이 완성된다. 보통의 청주는 여기서 제작과정이 모두 끝나지만 송순주는 시작일 뿐이다. 송순주의 특징은 청주와 소주를 합친다는 데 있다.

소주는 맵쌀로 찐 고두밥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주를 소줏고리에 넣고 40도 내외의 독주로 내린다. 18도의 청주와 40도의 소주를 혼합한 후 70일 정도의 발효 시간을 다시 거치면 알코올 농도 30도의 송순주가 비로소 완성된다.

▲ 소주를 내릴 때 쓰는 재래식 소줏고리
ⓒ 전라도닷컴
송순주는 원래 술보다는 약의 의미에 가까웠다. 소주와 청주의 혼합으로 만들어지는 제조비법도 여기에 기인한다. 송순주가 김씨 집안에 정착한 것은 400년이지만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고려 중엽이다. 몽고가 원나라를 세우면서 독주인 소주가 고려 땅으로 대량 유입되었다. 그런데 초식을 주로 했던 고려인들의 체질에는 소주가 맞지 않아 술독毒으로 인해 병들고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이 사회문제로 번져 고려 조정이 한때 금주령까지 내렸으나 실효가 없었다. 독한 술을 중화시키기 위해 소주와 곡주를 혼합시키는 송순주는 그 방편으로 만들어졌다.

“요 술이 원래 약이제. 술로 생긴 병은 요 술 마시문 금방 나아. 글고 알콜 도수를 높여 놓은께 술이 쉽게 상하지 않아서 좋제.”

평생 송순주를 지켜온 김씨의 소원은 어떻게든 송순주를 시판해 보는 것이다. 남편의 못다 이룬 꿈이 송순주 시판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꿈은 있는디 죽기 전에 될랑가 몰라. 내가 온갖 병은 다 갖고 있어. 날마다 약봉지로 살제. 내가 못하고 가문 아들이라도 꼭 해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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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04-02-19 16: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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